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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어머니, 겨레의 스승이 태어난 성지 '강릉 오죽헌'으로 떠나는 여행~!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강릉 오죽헌에 대해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한 국가의 사상과 철학은 경제활동의 단위인 화폐 속 인물의 모습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존 화폐의 오천원권에 등장하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새로운 오만원권 화폐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나란히 화폐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이다. 조선의 대학자인 율곡 선생을 낳고 교육시킨 어머니의 위치로만 신사임당이 우리나라 여성인물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와 문장, 글씨와 그림은 남성 위주의 조선 시대에도 탁월하였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친정집이다.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인 최응현의 집으로 본채는 소실되었다.

남아 있는 몽룡실은 사임당이 33세에 셋째 아들 이이 선생을 출산한 곳으로 중국 주자학을 철학적 사상으로 발전시킨 조선 성리학의 탄생지이다. 몽룡실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민가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남아 있는 안채와 함께 1975년 시작된 성역화 정비 사업을 거쳐 율곡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문성사, 자경문 등이 들어서 대규모 기념 공간이 되었다. 가옥 뒤편의 작은 정원을 빽빽하게 채우는 검은빛의 오죽으로 둘러싸인 율곡기념관에서 사임당의 그림과 율곡 선생의 편지와 상소문을 볼 수 있다. 함께 있는 강릉시립박물관은 굴산사지의 유물과 진전사지의 불상 등으로 꾸며져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살필 수 있게 한다.

-네이버 지식사전 참고-

오죽헌은 1450년 무렵 지어진 건물로 1505년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이 둘째딸의 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었다.

이사온은 외동딸을 서울의 신명화와 혼인시켜 딸만 다섯을 두었는데 그 둘째가 신사임당이다. 사임당의 어머니 요잉ㄴ이씨는 강릉의 친정어머니 최씨가 병이 나자 간호를 위해 강릉에 머물러 있을 때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을 낳았다. 또한 사임당도 서울의 이원수와 혼인하였으나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강릉에서 지내다 오죽헌에서 율곡을 낳았다. 비록 시집은 갔어도 친정부모를 보살피려는 '효' 때문에 신사임당과 율곡이 오죽헌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사임당의 어머니가 넷째 딸의 아들 권처균에게 현재의 오죽헌을 물려주었는데 '오죽헌'은 집주위에 까마귀 처럼 검은 대나무가 많아 권처균이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 경내에는 몽룡실, 문성사, 어제각, 율국기념관, 바깥채, 안채 및 시립박물관이 있다.

-강릉 오죽헌 안내도 참고-

쏠비치 호텔 & 리조트에서 강릉 오죽헌까지의 거리를 지도로 보겠습니다.

쏠 비치 호텔 & 리조트에서 강릉 오죽헌까지의 거리는 40km, 소요시간은 50분 입니다. ^^;

 

생각보다 가깝죠~?

쏠 비치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가기전~! 잠시 들려보는건 어떨까요~? ㅎㅎ

오죽헌의 주소는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201번지'

전화번호는 '033-640-4457'

운영시간은 '하절기 08:00~18:00, 동절기 08:00~17:30'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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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의 입구입니다.

입구에는 주차장이 있더군요~!

주차장은 무료! ㅎㅎ

오죽헌에는 입장요금이 있습니다.

입장요금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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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요금

구분

금액

개인

단체

일반

3,000

2,000

청소년,군인

2,000

1,500

어린이

1,000

500

※ 1. 단체: 30인이상

2. 강릉시민은 평일, 토요일, 공휴일 50% 할인(일요일은 무료) 단, 신분증 소지자에 한함

3. 무료입장: 만6세 이하, 만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5.18민주유공자

4. 휴관일: 1월 1일, 설날,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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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요금을 내고 표를 매표소에 내셨다면 꼭 리플렛을 받아가세요~!

아주 자세한 설명이 담겨져 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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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은 큰 공원이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하기 좋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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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으로 가는 길의 우측에 있던 율곡 이이 동상입니다.

그럼 율곡 이이에 대해 알아보겟습니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ㆍ석담(石潭)ㆍ우재(愚齋)이다. 1536년(중종 31) 음력 12월 26일에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李元秀)와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의 셋째 아들로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548년(명종 3) 진사시에 13세의 나이로 합격했으며, 조광조의 문인인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에게 학문을 배웠다. 1554년 금강산 마가연(摩訶衍)으로 들어가 불교를 공부했으나, 이듬해 하산하여 외가인 강릉으로 돌아와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다시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자경문은 입지(立志)ㆍ과언(寡言) 등 11개의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세운 것이다.

22세(1557년)에 성주목사(星州牧使)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하였고, 이듬해 예안(禮安)에 낙향해 있던 이황(李滉)을 찾아가 성리학에 관한 논변을 나누었다. 1558년(명종 13) 별시(別試)에서 천문ㆍ기상의 순행과 이변 등에 대해 논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으로 급제했으며, 1564년(명종 19년)에 실시된 대과(大科)에서 문과(文科)의 초시(初試)ㆍ복시(覆試)ㆍ전시(殿試)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여 삼장장원(三場壯元)으로 불렸다. 생원시(生員試)ㆍ진사시(進士試)를 포함해 응시한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여 사람들에게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과에 급제한 1564년에 정6품 호조(戶曹) 좌랑(佐郞)으로 관직에 나선 뒤에 예조(禮曹)와 이조(吏曹)의 좌랑을 거쳐 왕에 대한 간쟁과 논박을 담당하던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과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 등의 대간(臺諫)의 직위에 있었다. 1568년(선조 1)에는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 나라에 다녀왔으며, 1569년 홍문관(弘文館) 부교리(副校理)로서 역사의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던 춘추관(春秋館) 기사관(記事官)을 겸하여 <명종실록(明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또한 정철(鄭澈)과 함께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사회개혁안에 대해 논한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써서 선조에게 바쳤다.

1570년(선조 3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학문에 전념했다. 1571년 청주목사로 다시 관직에 올랐으나 이듬해 관직에서 물러나 해주로 낙향했다가 파주 율곡촌(栗谷村)으로 거처를 옮겼다. 1573년(선조 6)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승정원(承政院)의 동부승지(同副承旨)ㆍ우부승지(右副承旨)를 역임했으며, 1574년(선조 7) 당시의 사회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논한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써서 선조에게 바쳤다. 그해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으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낙향하였다. 하지만 다시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관직에 올랐고, 그 뒤 대사헌(大司憲), 홍문관 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했다.

홍문관 부제학으로 있던 1575년(선조 8) 선조에게 제왕학(帝王學)의 지침서인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저술하여 제출하였고, 1577년(선조 10)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해주로 낙향하여 어린이 교육을 위해 <격몽요결(擊蒙要訣)>을 편찬했으며, 1580년에는 <기자실기(箕子實記)>를 저술했다. 이 무렵 해주 석담(石潭)에 은병정사(隱屛精舍)를 건립하여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향약과 사창(社倉)을 실시하기도 했다.

[출처] 이이 [李珥 ] | 네이버 백과사전

율곡 이이는 응시한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우리나라 유교인 조선성리학을 완성한 위대한 사상가임이 틀림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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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의 입구에서 5분 정도 걸어다가보면 오죽헌 안내도가 나옵니다.

오죽헌 안내도를 자세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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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오죽헌

보물 제 165호

소재지: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오죽헌은 우리나라 어머니의 사표가 되는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또한 위대한 경세가요 철인이며 정치가로서 구국애족의 대선각자인 율곡 이이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사임당 신씨(1504~1551)는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다. 어려서부터 경문을 익히고 문장, 침공, 자수 뿐만 아니라 시문, 그림에도 뛰어나 우리나라 제일의 여류 예술가라 할 수 있으며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고 있다.

율곡 이이(1536~1584)선생은 어려서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워 13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명종 19년(1564) 생원시 식년문과에 모두 장원급제한 후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 등과 이조, 형조, 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조선 유학계에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로서 기호학파를 형성했고 당쟁의 조정, 10만군대의 양병을 주창하였으며 대동법, 사창의 실시에 노력하였다. 글씨,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문묘에 종사되었고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파주의 자운서원, 강릉의 송담서원 등 20여개 서원에 제향되고 있다.

오죽헌은 강릉 유현인 최치운(1390~1440)의 창건으로 아들 응현은 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고 이사온은 다시 그의 사위 신명화(사임당의 부친)에게, 신명화는 또 그의 사위 권화에게 물려주면서 그 후손들이 관리하여 오던 중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문성사, 기념관 등이 건립되어 현재와 같은 면모를 갖추고 선생의 위엄과 교훈을 길이 추앙하게 된 것이다.

-오죽헌 안내도 참고-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80sec | F/6.3 | 16.0mm | ISO-200

자경문을 지나면 오죽헌, 문성사, 바깥채, 안채, 어제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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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문을 지나자마자 저 멀리 율곡기념관이 보였습니다.

오른쪽으로는 오죽헌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네요~!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60sec | F/6.3 | 16.0mm | ISO-200

계단에 다다르자 문성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들어가보겠습니다~! ㅎㅎ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100sec | F/6.3 | 16.0mm | ISO-200

문성사는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이 자리에는 원래 어제각이 있었는데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이를 서쪽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지었답니다.

'문성'은 1624년 인조 임금이 율곡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판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고 하네요~!

내부 모습을 보시죠~!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60sec | F/4.5 | 16.0mm | ISO-500

내부에는 율곡 이이 선생의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40sec | F/4.5 | 16.0mm | ISO-500

그리고 문성사 뒷편에는 검은 대나무가 있었습니다.

줄기의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색이어서 오죽이라고 불리며 신성한 곳에서만 그 뿌리를 내린다고 하여 예부터 특별히 여겨왔다.

화본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죽순은 5~6월에 나오는데 첫해는 초록색이었다가 다음해부터 검어지게 된다. 강원도에서는 이곳 오죽헌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60년을 산다고 하여 꽃이 피면 죽어버린다고 한다. 1541년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오죽헌이라는 이름도 율곡선생의 이종사촌 권처균이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집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부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오죽헌 안내도 참고-

이제 오죽헌으로 가보겠습니다. ^^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40sec | F/9.0 | 16.0mm | ISO-200

오죽헌은 문성사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로 당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네요~!

이 건물은 주심포양식에서 익공양식으로 변해가는 건축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아 1963년 보물 제 165호로 지정되었다. 왼쪽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 살때까지 공부하던 곳이며 오른쪽방은 1536년 신사임당이 용이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은 곳이다. 몽룡실이라 부르고 있는 이 방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오죽헌 안내도 참고-

그리고 오죽헌 바로 옆에는 율곡매가 있었습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100sec | F/4.5 | 16.0mm | ISO-400

이 율곡매는 600년 된 매화나무로 오죽헌 몽룡실 옆에 있으며 오죽헌이 지어질 당시에 심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답니다.

신사임당은 매화를 좋아해 첫째 딸 이름을 매창이라 짓기도 하고 고매도 등을 그리기도 하였으며

율곡선생이 어렸을때 쓰던 벼루에도 이 매화를 새겨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천연기념물 제 484호로 지정된 매화나무입니다. ^^;

문성사와 오죽헌, 율곡매 까지 보셨다면 이번에는 안채와 바깥채를 구경할 차례입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125sec | F/4.5 | 16.0mm | ISO-400

안채의 모습입니다. 간결한 한옥의 모습이 참 아름답죠~?

조선 초기에 지어진 오죽헌 내의 건물들은 1505년 병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에 의해 전승되어 오다가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오죽헌과 바깥채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96년 정부의 문화재 복원계획에 따라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던 곳이고 바깥채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던 곳이다. 바깥채의 툇마루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겨 놓은 것이다.

-오죽헌 안내도 참고-

바깥채의 툇마루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겨 놓은 것이라네요~!

주련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160sec | F/4.5 | 16.0mm | ISO-400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가 아름다운 오죽헌의 한옥과 곁들여진 모습..!

아름답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바깥채는 남자들이 주로 거처하던 곳으로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율곡선생의 외할아버지 신명화, 아버지 이원수, 율곡선생의 이종사촌 권처균이 거처했던 곳이랍니다~!

[주말에 가볼만한 곳,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 체험학습 갈만한 곳, 가족여행지 추천, 여행지 베스트 50, 당일 여행코스, 국내여행지 추천]

이번에는 어제각으로 가보겠습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125sec | F/4.5 | 16.0mm | ISO-400

어제각은 정조임금이 1788년 율곡선생의 친필 '격몽요결'과 어린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릿글을, 벼루 뒷면에는 율곡선생의 학문을 찬양한 글을 새겨 소중히 보관하라는 분부를 내리자 이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들어가보시죠~!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30sec | F/6.3 | 16.0mm | ISO-400

율곡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 과 어린시절 사용하였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1788년 정조임금은 율곡이 어렸을 때 쓰던 벼루와 친필로 쓴 <격몽요결> 이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것을 궁궐로 가지고오게하여 친히 본 다음,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한 글을 새기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잘 보관하라며 돌려 보냈다. 당시 임금의 명을 받은 강원도관찰사 김재찬이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어제각이다.

-오죽헌 안내도 참고-

어제각까지 보셨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봐야할 keypoint~!

율곡기념관 앞 광장으로!

광장에는 눈에 익숙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70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60sec | F/6.3 | 16.0mm | ISO-160

바로 이곳~! ㅎㅎ

이곳은 오천원권(구권)의 촬영지점이라고 하네요~! ^^;

촬영한 사진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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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5천원(구권)과 비교해보시죠~!

문성사로 오르는 계단 주변으로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뒷편의 문성사와 오죽헌이 잘 안보이네요. ^^;

지금까지 겨레의 어머니, 겨레의 스승이 태어난 성지 '강릉 오죽헌'으로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대한민국 영어왕초보들이 반드시 봐야하는 최고의 무료 정보!!(주목)

1강. 왕초보영어 7일만 끝내기 - 8품사의 기초개념(1.4배속)



1강. 왕초보가 보는 강의 - 8품사의 기초개념(강의요약)

단어의 단은 짧은 단이 아닌 홑단 이라는것.
문장에서 단어를 셀때는 띄어쓰기를 보면 된다.
단! 지명,관사는 묶어서 센다

예전(대략 2000년전)에는 단어가 많이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올라가면서 단어들은 많아지고 그것들을 분류해둔게 8품사(우리나라는 9품사)
즉 모든 품사는 단어!

8품사를 정리하자면

- 명(名)사 : 아빠.호랑이
- 형용사 : 못생긴,잘생긴,아름다운 (명사를 꾸며준다)
- 대명사 : 명사 대신 쓰는 품사로써, ex) 이거(피자) 먹고 싶다. - 피자대신 이거(This)를 지시대명사
ex) 제가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 사람을 칭해서 제가 라는 말을 쓰는게 인칭대명사
- 동(動)사 : 달린다. 먹는다. 대부분 ~다 로 끝난다. (명사를 도와준다)
- 부사(aderb) : 동사를 꾸며주는 품사 ex) 빠르게 뛰다, 느리게 걷다
[aderb를 어원으로 풀어쓰면 동사쪽으로 말그대로 동사를 꾸며주는 품사 ]
- 감탄사 : Oh!, Bravo!, Ah! 사람의 감정상태를 나타내는 품사
- 접속사 : 말 그대로 접속해주는 품사 ex) I love you but you hate me(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그러나(하지만) 당신은 나를 싫어해)
- 전치사 : 맨 마지막에 태어난 품사이고, 기능이 포인트! 전치사 때문에 영어가 편리해 졌다.


8품사 다시한번 정리

- 명사: 인류 최초의 단어, 이름가진 단어 ex) 호랑이, 엄마, 아빠, 비누, 과자, 서울
- 동사: 한국말로 -다 로 끝나는거 동작을 나타내는것 ex) 씻다, 먹다, 줍다, 뛰다
- 형용사 : 명사를 꾸며주는 단어 ex) 아름다운, 예쁜, 귀여운 (-ㄴ으로 끝난다)
- 부사: 동사를 꾸며주는 품사 ex) 맛있게 먹는다, 빠르게 뛴다, 일찍 일어난다
- 감탄사: 감정을 타나내는 품사 ex) Oh!, Yeh! WoW! Bravo!
- 대명사: 사람,사물을 "나","저것"이라고 대신 부른다 ex) 나는 학생입니다.(인칭대명사), 저거 누구꺼냐?(지시대명사)
- 접속사: 접속해주는 품사 ex) She is beautiful and smart(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하다)
- 전치사: 명사 앞에 위치하는 품사 ex) in, on, to, of [He lives(동사) in Busan] 그는 부산에(부사구) 산다.
※동사를 꾸며주기 때문에 부사구! 일단 이정도만 알고 있기!
[The building(명사) in Busan is big] 부산에(형용사구) 있는 그 건물은 크다.

※명사를 꾸며주기 때문에 형용사구! 일단 이정도만 알고 있기!

[주말에 가볼만한 곳,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 체험학습 갈만한 곳, 가족여행지 추천, 여행지 베스트 50, 당일 여행코스, 국내여행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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